
#1. 쇼메(Chaumet) | 1780년
1. 창립자 마리-에티엔 니토(Marie-Étienne Nitot) | 1780년 부터 시작
쇼메의 역사는 1780년 마리-에티엔 니토라는 뛰어난 보석세공사로부터 시작됩니다. 니토는 1750년 파리에서 태어나 마리 앙투아네트의 궁정 보석세공사인 앙쥬-조제프 오베르(Ange-Joseph Aubert) 밑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며 보석세공 기술을 배웠습니다.
2. 프랑스 대혁명 속에서의 생존
니토의 특별함은 프랑스 대혁명 기간 중에도 살아남았다는 점입니다. 왕실과 연결된 많은 보석세공사들이 단두대로 향했지만, 니토는 1793년에 프랑스 왕실 보석 감정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는 1793년 한 편지에서 "보석은 프랑스 보석세공의 사부아-페어(savoir-faire)와 제조 기법을 대표하기 때문에 절대 판매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자신을 "자연주의 보석세공사(Joaillier naturaliste)"라고 칭했습니다.
3. 나폴레옹과의 만남: 정치적 보석의 탄생
1802년, 니토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공식 보석세공사로 임명되었습니다. 나폴레옹에게 보석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정치적 도구였습니다. 그는 프랑스를 다시 럭셔리와 패션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고, 보석을 통해 프랑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려 했습니다.
★ 니토가 나폴레옹을 위해 만든 주요 작품
▶ 나폴레옹 대관식 왕관과 의식용 검
▶ 교황 비오 7세를 위한 교황관(의도적으로 무겁고 작게 만들어진 일종의 모욕적 선물)
▶ 조제핀 황후의 결혼 보석 세트
▶ 마리 루이즈 황후의 결혼 파뤼르

4. 가문의 계승과 변천사
니토가 1809년 사망한 후, 그의 아들 프랑수아-레뇰 니토(François-Regnault Nitot)가 사업을 이어받았습니다. 1812년 그들은 방돔 광장 15번지로 이전했는데, 이는 방돔 광장 최초의 보석상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니토 가문 이후의 소유권 변천은 다음과 같습니다.
1815년: 공방 관리자였던 장-바티스트 포생(Jean-Baptiste Fossin)이 인수
1848년: 장-발랑탱 모렐(J.V. Morel)과 파트너십 형성
1875년: 모렐의 딸 마리(Marie)가 조제프 쇼메(Joseph Chaumet)와 결혼하며 가업 결합
5. 조제프 쇼메: 브랜드명의 탄생
조제프 쇼메는 15세부터 보르도에서 보석세공일을 시작한 인물로, 파리로 이주한 후 미래의 장인어른인 프로스페르 모렐 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1885년 회사 경영을 맡은 후 1889년 완전히 인수하며 회사명을 쇼메(Chaumet)로 바꿨습니다.
조제프 쇼메는 특히 진주와 보석 연구에 열정적이었으며, 품질 관리를 위해 전용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또한 다이아몬드 커터, 가죽 세공사, 상자 제작자 등을 위한 추가 공방을 설치하여 통합적 제작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6. 1987년 파산 스캔들: 충격적인 몰락
쇼메 역사상 가장 어두운 장은 1980년대에 발생했습니다. 조제프 쇼메의 후손인 자크 쇼메(Jacques Chaumet)와 피에르 쇼메(Pierre Chaumet) 형제가 회사를 경영하던 중, 1987년 14억 프랑의 부채(연간 매출액 1억 2500만 프랑의 8배)로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은 다음과 같은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사기와 배임
불법 은행업
파산 관련 범죄
특히 1984년 피에르 쇼메는 파리와 제네바 사이에서 거액의 현금을 불법 이동시키다 프랑스 세관에 체포되었지만, 정치적 이유로 사건이 무마되었습니다. 결국 1987년 인베스트코프(Investcorp)가 회사를 인수하며 쇼메 가문의 경영권이 완전히 끝났습니다.
#2. 쇼메 특징
1. 티아라의 명가: 2,000개 이상의 티아라 제작
쇼메는 1780년 창립 이래 2,000개 이상의 티아라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니토가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위해 조제핀 황후에게 만들어준 티아라가 시초가 되어, 쇼메는 "티아라의 집"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방돔 광장 12번지 본사에는 살롱 데 디아뎀(Salon des Diadèmes)이라는 티아라 전용 전시실이 있으며, 실제 티아라의 베이스 메탈 버전인 마이예쇼르(maillechorts)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2. 66,000점의 방대한 아카이브
쇼메는 240년 이상의 역사 동안 66,000점의 구아슈 드로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중 대부분은 19세기 작품들이며, 1890년부터 1930년까지의 작품들이 특히 풍부합니다. 이 드로잉들은 보석의 크기, 재료, 디자인을 기록한 기술 도면들로, 메종의 예술적 진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3. 조제핀 황후: 영원한 뮤즈
조제핀 드 보아르네는 쇼메의 첫 번째 주요 고객이자 영원한 뮤즈입니다. 그녀는 1805년 니토를 개인 보석세공사로 임명했으며, 식물학에도 조예가 깊어 말메종 성에 정원을 가꾸며 다양한 식물 종자를 프랑스에 도입했습니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사랑이 쇼메의 자연주의 디자인 철학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4. 방돔 광장 12번지: 역사적 건물
1907년 조제프 쇼메가 선택한 방돔 광장 12번지는 원래 클로드 보다르 드 보드리에(Claude Baudard de Vaudrier)가 소유한 개인 저택이었습니다. 이 건물의 그랑 살롱은 쇼팽이 마지막 작품을 작곡한 장소로도 유명하며, 현재는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020년 240주년을 맞아 완전히 리노베이션된 이 건물에는 나폴레옹과 조제핀의 사랑 편지 구절이 새겨진 회반죽 계단이 있어 브랜드의 로맨틱한 유산을 보여줍니다.
쇼메는 단순한 보석 브랜드를 넘어서 프랑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랑 이야기가 얽힌 특별한 메종입니다. 창업자 니토의 자연주의 철학부터 조제핀 황후와의 인연,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장인정신까지, 2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축적된 이야기들이 오늘날 쇼메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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