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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Jewelry)

에르메스(Hermès) | 창업자와 브랜드 스토리

by 알로하알로하 2025.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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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르메스 창업자와 브랜드 스토리 

 

1. 창업자 티에리 에르메스의 시작

 

에르메스의 역사는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 1801-1878)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1801년 1월 10일 독일 크레펠트에서 프로테스탄트 여관 주인의 여섯째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1821년 부모가 사망한 후, 그는 가죽 작업으로 유명한 노르망디의 퐁토드메르(Pont-Audemer)로 이주하여 마구와 안장 제작 기술을 배웠습니다.​

1837년 36세의 나이로 티에리 에르메스는 파리의 바스 뒤 랑파르 거리(rue Basse-du-Rempart, 현재는 존재하지 않음)에 마구 제작 공방을 열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유럽 귀족들을 위한 고급 말안장과 마구를 제작했으며, 그의 뛰어난 장인 정신은 빠르게 명성을 얻었습니다. 1855년과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그의 작품은 여러 상을 수상하며 명품 마구 제작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2. 2세대와 3세대: 확장과 혁신

 

티에리 에르메스가 1878년 사망한 후, 그의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Charles-Émile Hermès, 1835-1919)가 사업을 물려받았습니다. 1880년 그는 공방을 파리 포부르 생토노레 거리 24번지(24 rue du Faubourg Saint-Honoré)로 이전했으며, 이곳은 현재까지 에르메스 본점이 위치한 곳입니다.​

샤를 에밀의 아들인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Émile-Maurice Hermès, 1870-1951)는 브랜드 역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인물 중 한 명입니다. 1902년부터 1919년까지는 형인 아돌프와 함께 "에르메스 프레르(Hermès Frères)"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운영했으며,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 2세를 포함한 왕실 고객들을 확보했습니다.​

에밀 모리스는 1916년 북미를 방문하던 중 헨리 포드의 자동차 공장에서 지퍼를 발견했고, 1923년 프랑스에서 가죽 제품용 지퍼 특허를 등록했습니다. 이 혁신으로 1923년 최초의 가죽 핸드백인 볼리드(Bolide, 당시 이름은 부가티)를 선보였으며, 이는 지퍼가 달린 최초의 핸드백이었습니다. 지퍼는 프랑스 전역에서 "페르메튀르 에르메스(fermeture Hermès)"로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20년대와 1930년대는 에르메스가 말 장비 전문점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변모하는 시기였습니다. 1922년 에밀 모리스의 아내를 위해 최초의 여성용 핸드백을 제작했으며, 1925년 남성용 골프 재킷을 시작으로 기성복 라인을 선보였고, 1927년 주얼리, 1928년 시계와 샌들을 출시했습니다.​

 

3. 4세대와 5세대: 뒤마 가문의 시대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는 네 명의 딸을 두었고, 그의 사위들이 사업을 계승했습니다. 특히 로베르 뒤마(Robert Dumas, 1898-1978)는 1951년 회사를 물려받아 많은 혁신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최초의 실크 스카프, 켈리백, 그리고 노르망디 항구에서 정박한 배를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쉔 당크르(Chaîne d'ancre) 팔찌를 디자인했습니다.​

로베르 뒤마의 아들인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 1938-2010)는 1978년 CEO가 되어 에르메스를 현대적인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 변모시켰습니다. 파리 정치대학(Sciences-Po)과 하버드 비즈니스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교육을 받은 후 1964년 에르메스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모험적인 성격으로, 전 세계를 여행하며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의 리더십 하에 에르메스는 1978년 시계 제작(라 몽트르 에르메스), 1976년 존 롭(John Lobb) 구두 제조업체, 1993년 퓌포르카(Puiforcat) 은세공, 1995년 생루이(Saint-Louis) 크리스탈 등을 인수하며 다각화했습니다. 그는 1999년 장 폴 고티에의 브랜드 지분 35%를 매입하고 2004년 에르메스 여성복 라인의 디자이너로 영입했습니다.​

장 루이 뒤마는 버킨백 창조뿐만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고, 켈리백을 화려한 색상으로 재출시하며, 1990년대 중국 본토에 매장을 열어 럭셔리 브랜드 중 최초로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등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1996년 베이징에 첫 매장을 연 이래 중국 본토에는 현재 19개의 매장이 있습니다. 그는 2006년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했으며 2010년 파킨슨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출처) 에르메스 공식 웹사이트

 

4. 6세대: 독립성 수호와 현재

 

에르메스는 1993년 상장했지만, 가족은 여전히 회사 지분의 약 80% 이상을 보유하며 경영권을 유지했습니다. 2010년 LVMH의 CEO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가 비밀리에 에르메스 지분 23%를 확보하며 적대적 인수를 시도했습니다. "캐시미어를 입은 늑대"라는 별명을 가진 아르노의 공격에 맞서, 에르메스 가족은 52명의 가족 구성원이 연합하여 H51이라는 홀딩 컴퍼니를 설립하고 20년간 주식 매각을 금지하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 전쟁은 수년간 계속되었으며, 2013년 프랑스 금융시장청(AMF)은 LVMH의 주식 매입 방식에 불법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1,04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결국 2014년 LVMH는 보유한 에르메스 주식 23%를 모두 분배하고 5년간 추가 매입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철수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세대의 전쟁"으로 불리며, 가족의 단결과 독립성 수호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2013년 악셀 뒤마(Axel Dumas, 1970년생)가 공동 CEO로 임명되었고, 2014년 단독 CEO가 되었습니다. 티에리 에르메스의 6대 후손인 그는 법학 석사와 철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파리 정치대학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했습니다. 파리바 은행에서 베이징, 파리, 뉴욕에서 투자 은행가로 일한 후 2003년 에르메스에 합류했습니다.​

현재 에르메스 가족은 약 100명의 후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H51을 통해 회사 자본의 약 66.7%(의결권의 76% 이상)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2022년 말 가족 소유권은 67%로 증가했으며, 8개의 가족 오피스를 통합하여 "크레펠트 인베스트(Krefeld Invest)"라는 단일 투자 기구를 설립했습니다. 에르메스는 샤넬과 함께 LVMH, 케링 등 대형 럭셔리 그룹에 속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독립 명품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5. 장인 정신의 전통

 

에르메스의 핵심은 거의 200년간 이어진 장인 정신입니다. 티에리 에르메스가 처음 사용한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 기법은 현재까지도 사용되며, 각 가방은 가죽 재단을 제외하고 한 명의 장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으로 제작합니다. 켈리백은 15-20시간, 버킨백은 수백 시간이 소요되며, 장인들은 사내에서만 전수되는 전통 기법을 배웁니다.​

에르메스는 조립 라인 생산을 거부하는 유일한 주요 럭셔리 브랜드로, 각 제품에 장인의 고유한 각인이 새겨집니다. 가죽 표면은 손으로 깎고, 밀랍으로 코팅하며, 하드웨어는 못으로 고정됩니다. 이러한 전통은 제품의 품질뿐만 아니라 에르메스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핵심입니다.​

에르메스는 1837년 말 마구 제작 공방에서 시작하여 6대에 걸쳐 가족 경영을 유지하며 세계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각 세대는 혁신을 더하면서도 창업자의 장인 정신과 품질에 대한 헌신을 결코 잃지 않았으며, 이것이 바로 에르메스가 오늘날까지도 독립성과 정체성을 지키며 번영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출처) 에르메스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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